중계동 전셋집에서 시작된 내 집 마련 이야기 30대 후반 대학병원 직장인의 조금은 아슬아슬했던 부동산 경험담 나는 올해 서른여덟이다. 대학병원에서 일하는 전문직이다. 아이 하나 키우며 맞벌이로 사는,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평범한 집이다. 요즘 주변에서 "어떻게 집 샀어요?"라는 질문을 종종 받는다. 거창한 전략 같은 건 없었다. 겁도 많고 돈도 많지 않았던 사람이 어쩌다 보니 집을 사게 된 이야기에 더 가깝다.
중계동 전셋집, 모든 게 평범했던 시절 결혼하고 처음 살았던 집은 중계동의 작은 전셋집이었다. 지하철역에서 7분쯤 걸리는, 2000년대 초반에 지어진 빌라. 처음 집을 보러 갔을 때 아내가 이렇게 말했다. "여기 햇빛 잘 들어오네. 애기 키우기 괜찮겠다." 그때 우리는 아직 아이도 없었고, 전세금 마련하느라 양가 도움도 조금 받았다. 그래도 그 집은 우리에게 나름 "첫 보금자리" 같은 곳이었다. 퇴근 후 같이 장을 보고, 주말이면 근처 공원을 걷고, 가끔은 치킨 시켜 먹으며 드라마를 봤다. 평범하지만 꽤 행복한 시간이었다.
아이가 태어나고, 현실이 보이기 시작했다 결혼 2년 차에 아이가 태어났다. 아이 하나가 생기니 집이 갑자기 작아 보이기 시작했다. 유모차, 장난감, 아기 침대 거실이 순식간에 창고가 됐다. 그때부터였다. "언젠가는 집을 사야 하나?" 하는 생각이 조금씩 고개를 든 게.
집주인의 전화 전세 계약 2년이 끝나갈 무렵, 집주인에게 전화가 왔다. "요즘 전세 많이 올랐잖아요. 보증금 3천 정도는 올려야 할 것 같은데요." 당시 우리에게 3천만 원은 작은 돈이 아니었다. 최대한 조심스럽게 물었다. "혹시 조금만 조정이 될까요?" 집주인은 잠깐 침묵하다 말했다. "그럼 2천만 원만 올리죠." 전화를 끊고 한참을 멍하니 있었다. 월급은 거의 그대로인데 전세금은 계속 오른다. 그때 처음으로 생각했다. 이 구조가 계속 반복되겠구나.
이상하게 보이기 시작한 숫자 그 무렵부터 경제 기사나 데이터를 조금씩 들여다봤다. 처음엔 그냥 호기심이었다. 뉴스에서는 연일 이런 말이 나왔다. "유동성 확대", "통화량 증가", "M2 증가". 솔직히 처음엔 무슨 말인지도 잘 몰랐다. 그런데 어느 날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돈은 계속 풀리는데, 집이 갑자기 두 배씩 늘어나진 않잖아. 머릿속에 단순한 질문 하나가 떠올랐다. "그럼 결국 자산 가격은 올라가는 거 아닌가?"
두 번째 전세 협상 2년이 또 흘렀다. 예상대로 집주인에게 다시 연락이 왔다. "이번엔 4천 정도 올려야 할 것 같은데요." 그날 밤 아내와 오래 이야기했다. "이거 계속 이렇게 가면 우리 평생 전세만 살 수도 있어." 아내가 조용히 물었다. "그럼 집 사야 하는 거야?" 솔직히 그때도 겁이 났다. 집값이 떨어질 수도 있고, 대출도 무서웠다. 그래도 한 가지는 분명했다. 전세는 매번 협상해야 하지만, 내 집은 협상할 필요가 없다.
전세금 돌려받던 날 집을 사기로 마음먹고 전세 계약을 끝냈다. 이사 당일 아침 9시, 짐을 다 빼고 나왔는데 전세금이 안 들어왔다. 중개사는 "오늘 들어올 거예요"라고 했다. 오전 11시. 오후 1시. 오후 3시. 계좌는 여전히 조용했다. 솔직히 심장이 계속 두근거렸다. 혹시 문제 생긴 건 아니겠지? 전세금은 결국 오후 5시가 다 돼서야 들어왔다. 문자 알림을 확인하던 순간, 온몸의 힘이 빠졌다. 그날 이후 확신했다. 전세는 편한 제도가 아니라, 끝날 때까지 긴장해야 하는 계약이라는 걸.
전세사기 당할 뻔한 순간 지금 생각하면 꽤 아찔한 일도 있었다. 이사 갈 집을 보러 다니던 중, 전세 가격이 유난히 싼 집이 하나 있었다. "이 집 왜 이렇게 싸요?" 중개사는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급매라 그래요." 그래도 찝찝해서 등기부를 떼어 봤더니 근저당이 꽤 잡혀 있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 건물은 몇 달 뒤 보증금 문제가 터진 빌라였다. 그날 계약했으면 우리도 뉴스에 나왔을지 모른다.
결국 우리는 집을 샀다 엄청 좋은 집은 아니다. 대출도 꽤 있다. 그래도 한 가지는 확실하다. 집주인에게 전화 올 일이 없다. "보증금 올려주세요." 이 말을 더 이상 듣지 않아도 된다. 돌아보면 나는 부동산 전문가도, 투자 고수도 아니다. 다만 중계동 전셋집에 살면서 하나를 느꼈다. 세상은 생각보다 단순한 방향으로 움직일 때가 있다. 돈이 계속 늘어나면, 자산 가격도 결국 따라 오른다. 그걸 깨닫는 데 나는 꽤 오래 걸렸다. 덕분에 우리 가족은 지금, 전세 계약서 대신 등기부등본을 가지고 살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