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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평생 무주택자시던 엄마에게 아파트 당첨시킨 경험담2025-04-05 0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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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신이 내린 재능 "갓_지재" 입니다. 

행크에 글을 올린지 참 오래되었네요! ㅎㅎ

문득 다른 분들의 주옥같은 경험담을 읽다가 저도 도움이 될 만한 글을 적어보고 싶어서 예전에 블로그에 적었던 글을 공유합니다. 나의 과거를 오픈한다는 것이 쉽지 않지만, 행크에선 가능하잖아요 그쵸? ㅎㅎ

읽고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시면 좋겠어요. 

나는 상암동에서 나고 자랐다.

그 시절엔 상암동에 아무것도 없었다. 난지도가 쓰레기 매립지였던 시절이다.

아빠, 엄마는 신혼 생활을 상암동에서 시작하셨고 없는 살림에 월세방을 구하셨다. 단칸방에서 네 식구가 살았다.

나와 동생이 어린 시절이라 그나마 생활이 가능했던 거 같다. 살림도 별로 없었다. 

기억나는 건, 책상 하나, 작은 냉장고 하나, 옷장 하나, 그게 다였다.

주인집은 방 3개 거실 부엌이 있었다. 어릴 적에 맨날 주인집에 가서 놀았던 기억이 난다. 

주인집에 나보다 나이가 10살 이상 많은 3남매가 살고 있었고 다행히 오빠 언니들이 나와 동생을 엄청 이뻐했다.

그렇게 7년을 살다가 우리는 이사를 간다. 이사 가기 전까지도 월세방을 벗어나지 못했다.

아빠의 월급으로는 월세 내기도 빠듯했 던 것 같다.

세월이 지나 그곳엔 많은 아파트들이 지어졌고, 2002년도엔 월드컵 경기장이 생겼다. 아파트와 마트도 생기고 지하철역도 생겼다. 동네가 좋아졌고 집값이 올랐다. 

그렇게 좋아질지 몰랐지만, 알았다고 해도 달라질 건 없었을 것 같다.

그때는 대출이 정말 땡 빚"으로 인식되던 때였고 금리도 높았다.

아빠는 결혼 전에 열심히 모은 돈을 할아버지 시골집을 짓는 대다가 썼단다. 4형제 중에 셋째이고 큰형 공부시키느라 공부도 못하고 어릴 적부터 일만 했다던데 왜 혼자 효자 노릇해서 마누라랑 자식들을 고생시켰는지 모르겠다.

물어볼 수도 없다.

아무튼 상암동을 벗어나 이사 간 동네는 길음동이었다.

그때 길음동은 언덕 위에 집들이 다닥다닥 붙어있었다. 차는 다닐 수도 없고 사람 두어 명 지날 수 있는 그런 골목이었다. 

거기서도 월세를 살았다. 주인집엔 나랑 동갑인 남자애랑 남동생, 형제가 살았는데 정말 성격이 더럽게 못돼서 나랑 맨날 싸웠고 우리 남매를 맨날 괴롭혔다. 나는 7살부터 텃세를 경험했다. 힘들었지만 정말 괴로운 건 이사를 가지 않는 한, 벗어날 수가 없다는 것이다. 그냥 악착같이 싸우고 버텼다.

그렇게 살다가 이사를 간다. 시간이 지나고 길음동은 뉴타운으로 지정이 되어서 길음 뉴타운이 생긴다.

래미안을 비롯해 브랜드 아파트들이 들어섰다. 내가 살던 동네는 어디였는지 찾아볼 수도 없다. 동네가 좋아지고 집값이 올랐다.

정릉을 한 번 더 거쳐 마지막으로 이사 간 곳은 노원구다.

이사 간 곳도 자가는 아니었다. 임대 아파트였다. 저렴한 월세를 내고 오랜 기간 살 수 있도록 나라에서 복지 차원에서 임대해 주는 아파트. 

임대 아파트는 저렴하게 살 수 있어서 형편이 어려운 사람들에게 좋아 보이지만 거기엔 함정이 도사리고 있다.

벗어날 수가 없다. 

그곳보다 더 싼 월세를 찾기가 점점 어려워지고 (물가 상승에도 임대 아파트 월세는 크게 오르지 않는다) 내 집 같은 편안한 (나간다고 하기 전까지 내쫓지 않음) 마음으로 거주할 수 있다.

물론 거주환경이 좋진 않지만 사람은 환경에 적응을 잘한다. 익숙하면 편안해지는 것이다. 거지 같은 집이더라도 말이다.

그곳에서 정말 오래오래 살았다.

언젠가 한번은 임대 아파트에서 벗어나고 싶어서 난리를 쳤더니 엄마가 웬일로 내 보이스에 귀 기울여주셨다.

동네에 다가구주택 반지하를 보러 가자는 것이다. 반지하라도 좋았다. 넓고 우리 집이라면 좋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엄마는 집이 반지하라 맘에 들지 않고 이자를 내느니 임대 아파트가 낫다며 결국 이사를 안 가셨다.

그때 그 집을 샀더라면 엄마는 아이파크 한 채를 갖게 되셨을 텐데... 얼마 전에 가보니 아이파크가 지어져있더라. 

1층엔 스타벅스도 있었다. 

그렇게 세월이 흘렀고, 나와 동생은 출가를 했다.

엄마는 혼자 꿋꿋하게 임대 아파트에서 사셨다. 가끔 명절 때 가는 친정이 나는 싫었다. 좋은 기억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집이었다. 지긋지긋햇는데 엄마는 내 집 같아'서 좋단다. 엄마 집이 아닌데, 왜 자꾸 내 집 같다고 하시는 걸까. 

할아버지 할머니가 돌아가시면서 시골집을 엄마에게 남겨주셨다. 아빠가 결혼 전 지은 집을 40년이 지나서야 돌려받았다. 서울 집값이 미친 듯이 오를 동안 시골집은 아주 조금 올랐다. 그 돈으로 서울 집을 살 수가 없었다.

엄마는 아직도 무주택 청약통장을 갖고 계셨고, 안타깝게도 나와 동생이 출가하는 바람에 청약 가점이 내려갔다.

애매한 점수로 서울 청약은 로또 당첨 같은 행운을 바라야 했고 무엇보다 서울은 분양가가 높았다. 그리고 그때는 상승장이어서 규제란 규제는 다 때려 넣고 있었다. 전매 제한, 계약금 20퍼, 실거주 의무기한 등등. 이래저래 각을 해봐도 서울은 불가능했다. 높은 경쟁력을 뚫고 당첨된다 하더라도 엄마 나이에 영끌은 너무 위험하기 때문이다.

시간은 계속 흘러갔고 엄마의 가점과 시드머니는 그대로다. 결정을 해야 했다.

상암동도 놓치고 길음동도 놓치고 아이파크도 놓쳤다. 이제 더 이상 놓칠 수 없다.

문제는 엄마를 설득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엄마는 지금 사는 곳이 좋고 편하다고 하셨다. 대출받아서 이자 내기도 싫고 무리해서 이 나이에 살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청약통장은 아깝지만 때가 되면 사면 된단다. 

도대체 엄마의 때는 언제인걸까... 

그렇다고 포기할 내가 아니다. 청약을 넣을 만한 곳을 서울이 아닌 지역 중에 여기저기 추렸다. 

시간이 돈이다. 넋 놓고 있다가는 또 좋아진 곳들을 바라보며 '...껄껄' 거려야 한다.

엄마를 설득하기 위해 주기적으로 전화해서 청약을 하자고 했다. 

엄마 청약인데 왜 네가 왜 욕심을 부리냐며 난리를 치신다. 흑심이 있냐며 화를 내셨다. 

그래서 말했다. 

"엄마의 노후는 엄마가 책임지셔야죠. 아파트 투자해 놓으면 엄마가 노후에 그나마 든든하지. 자식들 눈치 안 봐도 되고 떵떵거릴 수 있잖아요."

팩폭은 마음을 상하게 하지만 직빵일 때가 있다. 

결국 엄마를 설득했다.

내가 선택한 지역은 고덕'이었다. 서울 고덕'이면 얼마나 좋겠나. 그때도 강동은 너무 비쌌다. 

그나마 덤벼볼 곳이 평택 고덕'이다.

청약 경쟁이 점점 심해지고 있던 때여서 그냥 되던 안되던 넣어보자 생각하고 넣었다. 신도시여서 전국 청약이 있어서 기회를 노렸다. 전국 청약이기도 했고 아직 도시가 완성 단계가 아니라서 그나마 경쟁이 덜 했다. 

엄마의 35년 된 청약통장이 당첨됐다. 로얄동 로열층으로.

처음에 안 한다던 엄마는 계약서에 도장을 찍고 돌아오는 차 안에서 계약서를 여러 번 꺼내 보셨다.

"이 나이에 집을 다 사보네. 고맙다. 딸내미." 라고 하셨다.

엄마는 소녀처럼 좋아하셨다.

그리고 나도 좋았다. 

엄마는 고덕 아파트는 전세를 주시고 사시던 동네에서 월세를 얻어서 살고 계신다.

아직 이렇다할 계획은 없지만, 엄마가 원하시는 대로 상황에 맞게 세팅해 드릴 계획이다.

평택 고덕신도시가 앞으로 좋아질까.

상암동처럼 길음 뉴타운처럼 아이파크처럼 말이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그리고 설득하는 것은 끈기와 기술이 필요하다. 포기하지 말자. 

마음만 먹는다면 우리는 인생에서 모든지 이룰 수 있다.

기회를 놓치지 않는 행크인들 되시길 응원합니다~ 

위기가 기회였다는 것을 지나고 나서 깨닫지 말자구요 우리 !!! 

아참!

엄마 명의로 최근에 경매 단타를 했던 경험이 있는데, 

큰 수익은 아니였지만 조만간 경험담으로 올리겠읍니다 ㅎㅎ

커밍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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