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서울 집값이 다시 오르고 있다. 6월 둘째 주, 서울 아파트 매매가격은 전주 대비 0.26% 상승하며 19주 연속 올랐다. 연율로 환산하면 14.5%에 달한다. 문재인 정부 시절의 불장을 연상시키는 수치다. 2. 전세도 오른다. 월세는 통계 집계 이래 역대 최고치를 경신했다. 주택 시장은 매매, 전세, 월세 중 하나를 선택할 수밖에 없는 구조인데 지금은 셋이 모두 오른다. 깡통전세로 수요가 전세보다 월세로 몰리면서 서울 아파트 월세지수는 전년 대비 10.3% 상승했다. 사람들은 월세 부담에 다시 전세를 찾고, 전세 불안은 다시 매매로 이어진다. 3. 이 모든 현상의 핵심은결국 공급 부족이다. 그리고 그 공급 부족은 단순한 땅의 문제가 아니라, 정책이 만든 제도적 병목에 가깝다. 지방의 미분양이 쌓이는 걸 보면 공급과잉이 어떤 결과를 낳는지 분명하다. 하지만 서울은 정반대다. 공급의 씨가 말랐다. 4. 이런 상황에서 한국은행은 기준금리를 2.50%로 0.25%p 인하했다. 작년 10월 이후 네 번째 인하다. 수출 부진, 내수 위축, KDI의 연 성장률 전망도 1.6%에서 0.8%로 하향됐다. 경기 대응 차원에서의 금리 인하는 어쩌면 고육지책이자 당연한 수순이었다. 문제는, 그 금리 인하가 공급이 막힌 부동산 시장에 유동성을 밀어넣는 역할을 하고 있다는 점이다. 시장은 반응할 수밖에 없다. 5. 기준금리는 인하했지만, 주담대 금리는 아직 빠르게 내려오지 않았다. (전에 글에도 주담대 금리가 단기적으론 내려오지 않을 것이라 말했다.) 5대 시중은행 기준 4월 주담대 금리와 자영업자 보증서 대출을 비교했더니 비슷하거나 부담대가 더 높았다. 심지어 담보가 있는 주담대보다 담보 없는 대출이 더 저렴한 은행도 생겼다. 이례적인 역전이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정부가 주택시장 과열을 경계하고 있기 때문이다. 금융당국은 시중은행에 가계대출 총량을 선제적으로 관리할 것을 주문했을 것이다. 6. 하지만 이 억제도 오래가지 못한다. 은행은 ‘이자장사’라는 여론에 자유롭지 못하다. 정부가 금리를 내렸는데, 시중금리를 묶어두면 불만이 터져나온다. 그래서 지금 오히려 더 걱정스러운 건, 이 억제를 뚫고 꿈틀대는 시장의 반응이다. 정책은 아직 멈춰 있는데, 시장 신호는 벌써 움직이기 시작했다. 7. 정부는 공급을 늘리겠다고 말한다. 하지만 현실은 다르다. 신도시는 입주까지 5년 이상, 재개발은 인허가만 10년 가까이 걸린다. 서울엔 땅이 없다. 결국 답은 재건축인데, 여기에 재건축초과이익환수제(재초환)가 버티고 있다. 조합원 이익의 최대 50%를 환수하는 제도. 사실상 “하지 말라”는 시그널이다. 양도세 중과, 다주택자 취득세 중복도 문제다. 2주택이 되는 순간, 시장 참여는 멈춘다. 세금이 공급을 틀어막고 있는 셈이다. 정부가 말로는 공급을 외치지만 제도는 반대로 작동 중이다. 8. 지방은 어떤가. 정부는 2억 원 이하 소형 주택에 대해 주택 수 제외, 기본세율 적용 등의 혜택을 줬다. 하지만 시장은 꿈쩍도 하지 않는다. 문제는 대출이 아니라, 다주택자에 대한 불신이다. 세제는 일부 풀렸지만, 여전히 종부세, 양도세, 대출 규제 등 리스크가 수두룩하다. 무엇보다 과거 정권의 손바닥 뒤집듯한 정책 변경은 투자자들에게 ‘정부는 믿을 수 없다’는 교훈을 줬다. 그 결과, 다주택자 포지션은 줄고, 서울 핵심지 똘똘한 한 채로 자금이 몰리는 게 시장의 합리적 판단이 됐다. 9. 그런데 이 와중에, 정부는 또 다른 카드를 꺼내들었다. 은행을 직접 규제하겠다는 방안이다. 국정기획위원회는 최근 은행에 부동산 관련 추가 자본 적립 의무를 부과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또 주담대에 적용되는 위험가중치 하한선을 15% → 25%로 올리는 것도 유력하다. 이 말은 결국, 같은 금액의 주담대를 내줘도 은행이 더 많은 자본을 확보해야 한다는 뜻이다. 결과적으로 은행들의 대출여력을 줄여서 시장 유동성을 차단하겠다는 의지를 피력한 것이다. 10. 문제는 이 조치의 부작용이다. 산술적으로만 봐도 5대 시중은행 기준 최대 238조 원 규모의 대출 축소 가능성이 제기됐다. 결국 누가 집을 살 수 있을까? 부담 가능한 사람만 시장에 남는다. 전세 수요는 다시 늘고, 전세가 상승 → 매매 갭 축소 → 갭투자 유입이라는 익숙한 순환이 반복된다. 결국 집값은 다시 오를 가능성이 높다. 돈 있는 사람만 살아남고, 중산층과 무주택 실수요저는 더 멀어지는 구조다. 이 흐름, 어디서 본 것 같지 않은가? 문재인 정부 시절, 15억 초과 주담대 금지 조치가 그랬다. 결과는? 집값은 그 이후에도 급등했고, 실수요자는 대출이 막혀 기회조차 박탈당했다. 당시엔 “사다리를 걷어찼다”는 비판이 쏟아졌고, 정부 정책에 대한 불신과 박탈감은 더욱 커졌다. 그때의 교훈을 벌써 잊은 걸까? 지금의 자본규제 카드도, 또 다른 ‘사다리 걷어차기’가 될 수 있다. 11. 사실 이 모든 원흉인 공급부족 현상은 한국만의 문제도, 단기 현상도 아니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글로벌 원자재 가격은 급등했고, 인건비와 금융비용까지 상승하며 공사비는 치솟았다. 전 세계 주요 도시는 공급이 줄고, 렌트비가 오른다. 뉴욕, 런던, 도쿄, 파리, 서울. 이건 구조적 현실이다. 공급은 줄었고, 금리는 내려가고 있다. 그 가운데 수요는 집중되고, 자산 시장은 움직이기 시작했다. 10. 그리고 지금, 그 구조 위에 새로운 정권, 이재명 정부가 올라섰다. 정권 초반은 흔히 ‘허니문 기간’이라 불린다. 언론도 유화적이고, 비판도 적다. 하지만 그 시기는 서서히 끝나가고 있다. 이제 선택의 시간이 왔다. 정부는 아직 출범 초기인 만큼 직접적인 부동산 규제책을 꺼내기보다는, 금융권을 압박해 유동성을 조절하는 방식으로 시장 대응을 시작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울 주요 입지의 집값은 오를 가능성이 크다. 그때 정부는 어떤 선택을 할까? 민주당의 기존 정체성과 충돌하는 다주택 규제 완화를 단행할 것인가, 아니면 그 정체성을 고수하며 기존 규제를 더욱 강화할 것인가, 혹은 새로운 방식의 제3의 해법을 보여줄 것인가. 지금은 정책과 시장이 정면으로 충돌하는 초입이다. 첫 번째 부동산 대책이 나오는 순간, 이번 정부의 정책 프레임이 드러날 것이다. 11. 물론 집값이 오르는 게 무조건 좋은 건 아니다. 전세도 오르고, 월세도 오른다. 정부의 세수는 늘겠지만, 서민의 고통은 더 커진다. 폭등도, 폭락도 옳지 않다. 지금 필요한 건 완만하고 예측 가능한 흐름이다. 그 흐름을 만들기 위해선, 정부가 규제를 강화하는 것보다는 규제를 완화하거나, 일정 부분 시장에 맡기는 유연함이 필요하다. 집값 상승은 한국만의 문제가 아니다. 공급 위축, 인건비·자재비 상승, 금리 변화 등 글로벌 구조 속에서 벌어지는 일이다. 그렇기에 지금 필요한 건, 시장에 신뢰를 주되, 민간을 통해 공급 확대를 유도하는 정책이다. 그래야 수년 후라도 가격이 제자리를 찾게 된다. 시장 가격은 결국 시장에 의해 조정된다. 과도한 개입은 되레 왜곡을 낳는다. 특히, 잘못된 규제는 우리가 이미 겪은 풍선효과와 부작용을 또 다시 반복하게 만들 뿐이다. 부디 사다리 걷어차기 시즌2가 벌어지지 않길 바라지만, 은행권 주담대 총량 규제를 보자니 심히 걱정되는 건 어쩔 수 없다. PS. 함께 보면 좋은 글 https://m.blog.naver.com/marbin1982/2232919624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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