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부산이 고향도 아니고, 회사도 울산에 있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어쩌다 보니 동부산 끝자락에 정착하게 되었고, 그렇게 부산시민이 되었네요. (개인적으로는 그냥 '일광읍민'이라는 생각이 더 들지만요ㅎㅎ) 이사를 오면서 이 카페에도 가입하게 되었고, 이후 이곳에서 접한 다양한 정보들을 통해 ‘부산’이라는 도시에도 자연스레 관심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사실 예전까지만 해도 부산 하면 해운대, 광안리 정도의 해안 관광 도시 이미지밖에 없었습니다. 말 그대로, 딱 거기까지였죠. 부산은 한때 제2의 수도라 불리던 멋진 시절도 있었지만, 요즘엔 노인과 바다라는 서정적인 오명(?)을 지니게 된 것 같습니다. 이는 외부에서의 조롱 섞인 평가뿐만 아니라, 부산 시민들조차 그 표현을 거리낌 없이 사용하시는 걸 보며 "정말 지금 이 도시가 우울하긴 우울한가 보다"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이곳에 이사 온 이후부터 지금까지 부산을 그렇게까지 부정적으로 바라보진 않고 있습니다. 6.25 전쟁 이후 전국이 폐허가 된 상황 속에서 그나마 원형이 남아 있던 도시였고, 전국 각지에서 몰려든 피란민 덕분에 폭발적인 인구 증가를 경험하며 고무, 조선, 항만물류 등의 산업 기반 위로 빠르게 성장한 도시였죠. 하지만 시대가 바뀌고 산업구조도 달라지면서 지금의 부산은 쇠퇴의 길을 걷게 된 것이고요. 마치, 처음엔 멋졌지만 시간이 지면서 유행에 뒤쳐진 낡고 후줄근해진 옷처럼요. 그리고 이제는 그 옷을 벗고 새 옷으로 갈아입고 싶지만, 매장에 입을 만한 옷이 다 팔려버려서 지금은 마땅히 살만한 옷이 없는 상황이... 지금의 부산이 아닌가 싶습니다. -고무산업은 인건비가 저렴한 동남아에 밀렸고 - 부산의 조선업은 중소형 선박 위주였던 탓에 초대형 선박 건조 능력을 갖춘 인근 지역에 밀렸고 - 항만물류는 한때 세계 3~4위의 물동량을 자랑했지만 지금은 중국과 동남아 항만에 자리를 내어준 상태입니다. 이래저래 부산은 경쟁력을 점점 잃어가게 되었고, 그 결과로 '노인과 바다'라는 말까지 나오게 된 거라고요. 그리고 사실, 기존의 트렌디한 산업들을 유치하기에도 어려움이 많았던 도시입니다. 부산이 앞서말한 산업으로 한창 흥하고 있던 시기에 생겨난 산업들은 이미 다른지역에 터를 잡은 상황이었기에 부산의 산업이 쇄락한다고 한들 옮겨야 이유도 필요도 없었으니까요. 하지만 저는 그래도 부산이 가진 지리적 이점은 여전히 유효하다고 봅니다. 아시아 대륙의 끝, 반도의 남쪽 끝에 위치한 도시. 이 지정학적 위치만큼은 바뀌지 않으니까요. 가장 쉬운 비유는 ‘재건축’일 겁니다. 아파트도 낡아야 재건축을 하듯, 부산도 지금은 낡은 시기를 지나며 변화의 기회를 기다리는 중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지구온난화는 인류에겐 위기지만, 그로 인해 북극항로가 현실화되면 부산은 새롭게 조명받을 가능성이 큽니다. 유라시아 대륙횡단철도가 실현된다면 그 종착지로서의 부산은 엄청난 기회를 맞이할 수 있겠죠. 여기에 가덕도 신공항까지 더해진다면 부산은 명실상부 동북아의 트라이포트(Tri-Port)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앞으로 각광받게 될 최첨단 산업군이 이미 타지역을 점하고 있는 아직은 유효한 산업들을 미리 철거하고 들어가진 못할 것이기에 상대적으로 공간과 기회가 있는 부산은 오히려 잠재력이 있는 도시라고 봅니다. 물론 모든 장밋빛 청사진이 다 실현되진 않을 겁니다. 상당한 시간도 필요하겠죠. 하지만 결국, 될 일은 되더라고요. 노인과 바다라는 표현 속에서 노인은 세월에 따라 바뀔 수 있지만, 지정학적 이점을 지닌 부산의 바다는 바뀌지 않습니다. 그런 바다를 지닌 도시 부산이기에 저는 앞으로 부산은 분명 턴어라운드가 가능하리라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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