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출퇴근 길에 보던 익숙한 낡은 건물이 갑자기 철거 되더니, 새 건물이 지어지고 임대 현수막이 붙어있는 것을 발견합니다. 처음엔 대수롭지 않게 여깁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동네에 소문이 돌기 시작합니다. 저 건물을 지은 사람이 건물 팔아 몇십억원을 벌었다나. 궁금해진 당신은 인터넷에서 실거래 기록을 조회해봅니다. 2020년 초 80억원에 팔렸던 건물이 1년만에 130억원에 다시 팔렸네요. 건물에 전혀 관심 없던 당신은 동네에 낡은 건물이 80억원씩이나 했다는 거에 첫 번째로 놀라고, 그게 1년만에 50억원이 올랐단거에 더욱 놀랍니다. 공사비는 얼마나 들었을까, 어떻게 사고 팔았을까 궁금해집니다. 문득 주변을 둘러보니 여기저기 공사현장이 굉장히 많아진게 보입니다. 나도 어디 낡은 건물 하나 대출로 사서 공사비 좀 들여 신축 해서 팔면, 양도세를 떼더라도 얼마간 남지 않을까. 강남은 너무 비싸고, 타지는 잘 모르겠으니까 홍대 같은 서울 시내 중 한 군데쯤이면 괜찮지 않을까. 좀 찾아보니 여기도 만만찮은 가격입니다. 혼자서는 아무래도 무리고, 친구 몇이랑 돈을 모아서 한다면 못 할 것도 없어보입니다. 하지만 이내 생각을 접습니다. 보고 있던 아파트 값이 슬금슬금 오르다가 갑자기 천정부지로 오르고 있기 때문입니다. 건물 투자하려면 집을 팔아서 해야 할 판입니다. 곧 애들 때문에 이사도 가야할텐데 괜히 잘 모르는 분야를 시도하기엔 겁이 납니다. 아니, 집도 없는데 무슨 건물이야. 주식으로 수익을 본 사람이 그렇게나 많다는데, 나도 주식 공부나 해볼까. 지금이라도 빨리 아파트를 사자는 아내의 말에 집값은 고점이니 좀 기다려보라고 설득해봅니다. 지금 남은 돈을 전부 집에 몰빵하라니, 너무 불안합니다. 그래도 남들 다 돈 벌고 있는데, 돈을 놀려두는건 더 불안해서 대충 좋아보이는거 좀 이거저거 주식 계좌에 담아둡니다. 그렇게 어영부영 정신없이 살다보니 어느덧 뉴스에서 부동산 시장이 하락한다는 뉴스가 도배됩니다. 아파트 값도 내리기 시작하고, 상가나 지식 산업센터는 공실이 넘친다고 합니다. 크고 작은 공사 현장들은 중단되고 유치권 현수막들이 붙어있습니다. 여기저기서 갑자기 부동산 망한다는 소리가 들려옵니다. 내 주식 계좌도 녹아내리고 있습니다. 허겁지겁 샀다 팔았다 하다 보니 원금이 반토막 직전입니다. 고점에 너무 많이 사서 아무리 물을 타도 평단가는 잘 내려가지 않습니다. 하필 내가 물을 탈 때면 또 다 단기 고점입니다. 더 내리기만 하는걸 보는게 괴롭습니다. 주저하다 사봤었던 코인들도 벌써 반토막 이하입니다. 분산투자를 한 게 아니라 다 같이 망하는 걸 택한 것 같습니다. 그래, 정리하자. 내 그럴 줄 알았다고 속을 뒤집어놓는 배우자에게 내 다시는 주식을 하지 않겠다 싹싹 빌고 어떻게든 넘어갑니다. 용돈은 반으로 깎였지만, 역시 허락보단 용서가 쉬운 것 같습니다. 이제 어떻게든 되겠지. 차 한 대 값은 날렸다 생각하고 다시 열심히 노동을 시작합니다. 정신없이 일하다보니 한두해 정도는 또 금방 지나갑니다. 다시 돈을 겨우겨우 모아 이사를 하려고 아파트 값을 알아보고 있는데, 어느샌가 가격이 지난 기억 속의 최고가들까지 올라온 것을 발견합니다. 어라, 주식도 찾아보니 내가 손절 했던 주식들도 거의 다 회복했거나, 오히려 더 올랐습니다. 하필 내가 다 판 때가 최저점이었습니다. 아, 그 때 기다렸다 샀으면 2배 먹는건데. 하다못해 가만히 있을 걸. 다시 사려니 이전 가격이 생각나 손이 안 나갑니다. 그런 나를 비웃고 열차는 출발합니다. 서울 시내 아파트 값들은 모두 다시 위를 향해 꿈틀거리고 있고, 금은 역사상 최고가를 몇 달째 갱신합니다. 남들이 폰지사기라던 비트코인도 마지막 기억보다 최소 3배는 올랐습니다. 정작 모든 자산 값은 다 올랐는데, 나는 크게 번 게 없습니다. 우리 애 돌 반지가 내 수익률보다 좋습니다. 다 내려서 망하는게 아니라, 다 올라서도 망할 수 있구나를 체감합니다. 모든 유튜브에서 화폐의 가치가 얼마나 쓰레기인지 설왕설래들 하고 있습니다. 정확히는, 원화 이야기입니다. 달러 환율조차 치솟고 있기 때문입니다. 최후의 하락론자조차 침묵합니다. 이제 인플레이션은 상식인 시대가 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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